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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2
남쪽에서 올라오던 꽃소식이 잦아들 즈음, 서천 끝자락 마량리는 뒤늦게 가장 선명한 색을 내민다. 두 번째 피어나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마량리 동백나무숲으로 향했다. 독특한 지형 덕분에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마량포구도 들렀다. 그렇게 서천에서 지나가는 계절을 배웅하고 다가올 계절을 마중해 본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수령 500년 안팎의 나무 80여 그루가 바닷바람을 견디며 군락을 이룬 곳이다. 거센 풍파를 이겨내느라 위로 자라기보다 옆으로 가지를 뻗은 덕분에, 꽃이 눈높이 가까이 내려와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꽃의 결이 그대로 보인다.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선명한 붉은빛이 시선을 끈다. 마량리의 동백은 이제 막 절정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다. 가지마다 촘촘하게 매달린 꽃들이 숲의 상단을 수놓는 동안, 나무 아래에는 먼저 떨어진 꽃들이 길 위를 덮고 있다. 동백은 시들어 흩어지는 대신 꽃송이를 통째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땅 위에서도 본연의 형태를 잃지 않은 꽃들을 보게 되는데,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그리고 떨어진 채로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난다’는 말을 이곳에서 비로소 실감한다. 산책로는 길지 않다. 약 300m 남짓. 그럼에도 숲을 다 돌아보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린다. 나무 위의 꽃과 발밑에 내려앉은 꽃,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바다까지 시선이 머무는 지점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산책로를 따라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오르면 동백정이 나타난다. 길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정자로, 나무 사이로 이어지던 시야가 이곳에서 시원하게 열린다. 저 멀리 서해가 펼쳐지고, 맑은 날에는 수평선 위로 오력도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숲에서 내려와 차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마량포구에 닿는다. 푸른 바다와 정박한 어선들. 항구에 묶인 배들은 물결에 맞춰 천천히 흔들리고, 한쪽에서는 작업자들이 그물과 어구를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예부터 ‘마량진’이라 불리던 이곳은 조기잡이로 이름을 알린 포구로, 지금도 어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 일대는 만과 곶이 발달한 해안 지형 덕분에 시야가 넓게 트이고, 물때에 따라 풍경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고, 배 아래 바닥까지 보이며 또 다른 장면으로 바뀐다. 이맘때는 주꾸미와 바지락 등 제철 해산물이 풍부해 인근 식당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방파제를 따라 걷다 보면 중간에 쉬어가는 공간도 나온다. 끝까지 나가면 노란 등대가 서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주변을 가로막는 것 없이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풍경 외에도 기억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처음 전해진 장소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이 마량포구다. 19세기 초, 영국 함선이 이 해안에 정박하면서 조선 관리에게 건네진 책 가운데 성경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구 뒤편에 있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을 함께 둘러보면 그 역사를 더 이해하기 쉽다. 해 질 무렵의 마량포구를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화려하지도, 볼거리가 많은 곳도 아니다. 그런데 이곳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저, 귀하게 느껴지는 풍경. 시원한 바닷바람 때문인지, 잔잔한 윤슬 때문인지, 이유를 굳이 알지 않아도 좋다.
서천에 왔다면 주꾸미를 빼놓을 수 없다. 마량포구 인근에 위치한 서산회관은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주꾸미 전문 식당이다. 대표 메뉴는 주꾸미 철판볶음과 샤브샤브, 낙지 탕탕이.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찾는 건 단연 주꾸미 철판볶음이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씹을수록 단맛이 살아나는 주꾸미에 싱싱한 미나리를 더해 식감과 향을 살렸고, 매콤한 양념과 불향이 어우러져 한입 먹을수록 젓가락을 멈출 수 없다. 마지막은 역시 볶음밥.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으면 깔끔하고 완벽하게 식사를 마무리 할 수 있다.
마량포구 근처에 자리한 카페 로우커피바. 과하게 꾸미지 않은 공간에 우드톤 가구와 낮은 조명이 어우러지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이곳의 매력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에 있다. 커피 한 잔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로우커피바의 대표 메뉴는 크림라테와 녹차크림라테다. 크림라테는 부드러운 크림과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이 어우러져 부담 없이 즐기기 좋고, 녹차크림라테는 은은한 녹차 향에 고소함이 더해져 입안에 부드럽게 퍼진다. 풍경이 좋아 들른 곳이었는데, 크림라테의 맛에 한 번 더 찾게 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