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여행

부안 채석강부터 적벽강까지

같은 바다, 다른 장면
시간 따라 걷는 부안 해안

부안의 해안은 한 번에 설명되지 않는다. 낮에는 바위의 형태가 먼저 보이고, 해가 기울면 색이 풍경을 바꾼다. 채석강에서 시작해 적벽강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동보다 시간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는 흐름에 가깝다. 같은 공간이지만, 머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이 남는다.

PM 1:00

#채석강 #해안절벽 #지질명소 #해식동굴

채석강. 이름만 보면 물이 흐를 것 같지만, 이곳에는 강이 없다.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에서 닭이봉 일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해안절벽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모습이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채석강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 켜켜이 층을 이룬 바위층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위로 파도가 부딪쳤다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수천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이 자연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경건해진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유독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해식동굴이다. 낮게 드리운 천장 아래로 층을 이룬 바위가 안쪽 깊숙이 이어진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태가 아니라, 파도에 깎이며 남은 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발밑도 고르지 않다. 울퉁불퉁한 바위와 얕은 물웅덩이가 이어지고, 그 위로 물이 스쳐 간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무는 이유는 동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풍경 때문이다. 불규칙하게 깎인 바위가 하나의 프레임이 되고, 그 사이로 하늘과 바다가 들어온다. 사진을 찍고 나면 알게 된다. 왜 이곳이 채석강의 대표적인 포토존이 되었는지를.

채석강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바닷물이 빠지고 간조에 가까워질 때, 물 아래 숨겨져 있던 바위층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해식동굴 역시 그 순간에만 온전히 만날 수 있다.

PM 5:00

#수성당 #바다를지키는곳 #유채꽃언덕

채석강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수성당이 있다. 부안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이곳은 3월 중순이면 노란 유채꽃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꽃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시야가 열리듯 바다가 펼쳐진다. 4월이면 이 길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아직은 몇몇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만 조용히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수성당은 단순한 전망 명소를 넘어, 바다를 지켜온 이야기가 남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서해 바다를 걷다 깊은 곳은 메우고 얕은 곳은 트며 어부들을 살폈다는 여신 개양할미가 이곳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개양할미와 여덟 딸을 모시는 제당이 바로 이곳 수성당인 것이다.

PM 6:30

#적벽강 #노을명소 #붉은절벽

해가 질 무렵, 적벽강으로 향한다. 채석강의 떠들썩함과는 달리 이곳은 고요한 기운이 감돈다. 적벽강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소음은 점점 멀어지고, 바다와 바람의 소리만 또렷해진다.

적벽강은 이름처럼 붉은색을 띤 해안절벽이 특징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과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만나 오묘한 빛깔과 무늬를 만들어냈다. 발밑에 깔린 둥근 몽돌들은 파도가 칠 때마다 ‘자르르’ 소리를 내며 구르는데, 그 소리가 마음의 소음을 씻어내 주는 것만 같다.

적벽강의 색은 해 질 무렵 가장 또렷해진다. 햇살이 붉은 절벽에 닿으면 암벽의 색은 더욱 짙어지고, 바다와 하늘마저 같은 색조로 물든다. 왜 이곳이 서해를 대표하는 일몰 명소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앞의 풍경이 증명해 준다.

채석강에서 시작해 수성당을 거쳐 적벽강에 이르는 길. 같은 바다를 곁에 두고 걸었지만, 마주한 장면은 단 한 순간도 같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부안의 바다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치 않다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곳이라고.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해변로 25

부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은 단연 ‘백합’이다. 조개의 여왕이라 불리는 백합은 해감이 필요 없을 만큼 깨끗하고, 담백한 맛이 매력적이다. 이곳에서는 그 백합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가장 먼저 맛봐야 할 메뉴는 백합구이다. 귀한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나하나 은박지에 싸서 정성스럽게 구워낸다. 조개 입이 벌어지는 순간, 안에 고여 있던 뽀얀 국물이 바다의 풍미를 그대로 전한다. 백합탕은 시원한 국물로 속을 편안하게 풀어주고, 백합죽은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한 끼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여기에 전라도 특유의 정갈하고 짭조름한 밑반찬이 더해지면, 완벽!

전북 부안군 변산면 궁항영상길 48

카페 마르는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실내는 화이트와 베이지 톤으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바깥에 있다. 바다를 향해 놓인 좌석에 앉거나, 빈백에 몸을 맡기면 파도 소리와 바람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다. 좋아하는 음료와 고소한 디저트를 곁들이고, 한쪽에 놓인 흑백사진기로 사진 한 장을 남기면 그 순간의 분위기가 더 또렷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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