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문화적 코드를 지칭하는 ‘Y2K’가 요즘 젊은 세대에 의해 다시금 향유되고 있다. 문화적 회귀와 동시에 과거에 유행하던 요소들이 우리 삶 속속들이 파고든 것. 과연 유행은 돌고 돈다.
글. 편집실
복고 관련 콘텐츠가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패션, 화장법, 헤어스타일, 전자기기까지.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 Y2K 색채가 짙게 녹아 있는 문화 사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주목할 점은 복고 문화는 단순히 과거 상품과 스타일을 그대로 되돌린다기보다 새로운 감각을 덧입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촌스러운 감성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닌 과거의 느낌을 충분히 구현하면서 힙한 트렌드로 재탄생하는 것. 과거를 기억하는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젊은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문화로 다가가는 것이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신을 과감히 표현했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의 문화 감성이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심리를 제대로 저격하며 이 시대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열풍이 다시 확산하면서 패션 시장에서도 당시 유행했던 아이템이 주류로 떠올랐다. 허리선을 드러내는 기장의 크롭톱에 통 넓은 청바지를 매치하는 착장이 대표적이다. 셔츠, 후드티, 재킷까지 짤막한 크롭 기장으로 출시되고 있다. 반다나 스카프, 니삭스, 실핀, 곱창밴드, 벙거지 모자, 통굽 운동화 등도 Y2K 패션 트렌드를 대표하는 액세서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Y2K룩’의 화려한 귀환은 과거 브랜드의 컴백을 재촉하고 있다. ‘챔피온’, ‘리(LEE)’, ‘보이 런던’, ‘미치코 런던’ 등 한동안 활력을 잃었던 브랜드들이 재론칭되거나 복고 열풍을 타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중이다. 1990년대를 접하지 못 한 10~20대 소비자층은 이 시기 유행하던 브랜드들을 오히려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하며 흥미와 관심을 드러낸다.
세기말 감성은 대중문화 시장에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가요 트렌드는 X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몇 해 전부터 가요계에서 유행 중인 레트로 비트에서 나아가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곡의 멜로디를 선보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1990~2000년대 곡이 샘플링 및 리메이크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것. 친숙하고 편안한 멜로디에 새로움을 덧입힌 곡은 폭넓은 세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신인 보이그룹 라이즈의 <Love 119>가 대표적. 밴드 이지(izi)가 2005년 발표한 곡 <응급실>을 샘플링한 곡이다. 극장가에서도 레트로 무드가 감지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990년대 히트작이었던 만화를 영화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500만 명에 근접한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월드와이드 흥행작 <타이타닉>도 25년 만에 돌아와 영화관을 휩쓸었다. 이렇듯 시대의 명작들이 세대를 넘나들며 또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로 경험과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Y2K 감성을 하나의 놀이로 여기며 자신의 SNS를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2000년대 사용했던 피처폰이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를 사용해 찍은 사진과 영상을 SNS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화질로 편집한 브이로그나 저화질 디지털카메라를 리뷰하는 영상도 공유된다. 2000년대 초에 출시된 피처폰은 접히는 폴더폰으로
전화, 문자 등 최소한의 기능만 있는 휴대전화로 요즘 트렌드로 떠올랐다. 2010년대 이후 ‘효도폰’으로 불리며 높은 연령대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디지털 디톡스’에 나선 젊은 층의 관심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폴더폰의 추억을 연상케 하는 폴더블폰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폰꾸(휴대전화 꾸미기) 역시 Y2K의 유행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에 키링이나 캐릭터 인형,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레트로 코드와 복고 문화가 변화무쌍한 변주를 거듭하며 생명력을 이어가는 가운데, Y2K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유효할 전망이다. ‘오래전’ 문화를 매개로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는 소비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