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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5년 7월  342번째 이야기

2025년 7월  342번째 이야기

읽다

취미부자, 마음부자
그리고 감수성의 재벌 되기

취미 부자, 마음 부자, 그리고 감수성의 재벌 되기 같은 것들은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삶의 가치입니다.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저자. KBS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데미안 프로젝트>, <문학이 필요한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끝까지 쓰는 용기>,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빈센트 나의 빈센트> 등을 썼다.

100세가 넘는 장수 노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장소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던 오키나와에서 ‘당신의 장수 비결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자 많은 사람들은 ‘이키가이’, 즉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있는 삶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 노는 것, 열심히 낚시해서 이웃들과 나눠 먹는 삶이 그들의 이키가이, 즉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뭔가 대단한 장수식품이나 특별한 운동비법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아무 할 일이 없다면,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살아갈 이유가 점점 줄어들겠지요. 아프면서 장수하는 것도, 하루 종일 아무 할 일이 없이 그저 장수만 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냥 나이만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부자인 채로, 영혼이 충만한 채로, 매일 내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진짜 부자들의 특징’은 돈이나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이나 권력은 갖고 싶다고 해서 금방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취미 부자, 마음 부자, 그리고 감수성의 재벌 되기 같은 것들은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삶의 가치입니다. 소박한 취미를 가꾸고, 내 마음을 매일 돌보고, 삶을 더 섬세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풍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런 마음 부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법을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부자의 필수요건이 아닐까요.

내 마음이 가장 부자였을 때를 떠올려보았습니다. 흔히 ‘리즈 시절’이라고 하지요. 리즈 시절이라고 하면 한 사람이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시절이 떠오르지만, 나의 리즈 시절은 사실 앞날이 캄캄했던 20대 후반, 대학원 시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문계 대학원생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했지만, 그 서글픈 ‘열정 페이’의 시절, 나는 그래도 공부가 그저 좋았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인 내가 참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소설과 시와 에세이와 희곡을 읽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그리고 알려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조용히 나의 글을 쓰는 삶이 좋았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아닌 척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삶을 선택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아 죽겠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 하나라도 있는 삶은 얼마나 보람 있는지요. 물론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낼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던 시간은 불안했지만, ‘학교에만 가면, 집에만 가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제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아직 불안하더라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행복의 원천을 찾아낸다는 것, 그것이 마음부자, 감수성의 재벌 되기의 제1요건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배운 삶의 기술을 지금까지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면의 기쁨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영어단어가 블리스(bliss)입니다.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그저 내 마음이 기쁜 순간들. 영혼의 충만함, 마음의 기쁨을 따라가는 삶이 바로 ‘블리스를 누리는 삶’입니다.

얼마 전에 발레 공연을 보다가 바로 그런 인생의 블리스를 느끼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발레 공연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기에, 더욱 집중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은 그 모든 순간을 가득 찬 긴장 속에서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해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긴장과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완(relax)’에 도달하지 못하면 결코 해낼 수 없는 동작들이 있습니다. 무용수들은 어려운 동작을 하거나 하늘 높이 솟구칠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용수들은 온몸을 자연스럽게 이완하는 동작에서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힘을 빼고 걸어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기만 해도 그 몸짓 하나하나가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삶의 희열이라는 눈부신 광채가 피어오르는 듯 했지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엄청난 집중력을 기울여서 바라보고 있는 순간들. 정말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숨 막히는 퍼포먼스가 가슴 속에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아주 느리고 자연스러운 작은 동작들까지도 찬란하게 느껴졌습니다. 숨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가득한 긴장감 속에서 그들은 한 동작 한 동작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돕고 서로를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혼자만 빛나는 독무가 아니었습니다. 무용수들은 서로에게 손이나 발이 되어주고, 서로의 받침대가 되어주며, 마침내 서로의 영혼이나 숨소리까지 되어주는 듯 느껴졌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조화로운 군무를 일구어내고 있었습니다.

독무도 아름다웠지만 군무의 아름다움이 유난히 돋보이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림도 음악도 글쓰기도 아닌 오직 발레의 동작 하나하나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무한한 순수에 매혹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용수들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 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순간에는 외부의 모든 자극으로부터 해방되자고. 타인의 인정, 주변의 시선, 이런 것들에 휘둘릴 틈도 없이, 오직 내가 꿈꾸는 그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자고. 그 순간 무용수들은 단지 ‘발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향해 우리 모두를 데려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일상과 예술과 노동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순간. 예술이 곧 노동이자 일상이 되는 사람들의 기쁨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일 조금씩 ‘마음의 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글을 쓰고, 점심에는 좋아하는 시나 소설을 읽고, 저녁에는 음악을 듣거나 공연, 전시를 관람하며 하루하루의 감수성을 부풀려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늘 이렇게 이상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에 찌든 날’의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를 향해 떠나는 작은 소풍’의 시간을 마련해 두면 어쩐지 감수성의 재벌, 취미의 부자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취미로 첼로를 배우고 있는데, 첼로를 배우는 시간만큼은 온갖 걱정과 시름에서 놓여나는 해방감이 좋습니다. 첼로 선생님과 이중주를 하는 동안에는, 오직 첼로 소리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항상 ‘언어’로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작가라는 직업에서 잠시 해방되는 것입니다. 언어가 아닌 멜로디로, 글쓰기가 아닌 음악으로 나를 표현하는 그 시간 자체가 치유적인 울림을 줍니다. 이렇듯 마음의 부에는 가끔 ‘덤으로 한꺼번에 주어지는 행복’이라는 어여쁜 이자가 붙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의식적으로 내 감정과 갈망을 돌보기 시작하면 됩니다. 마음의 부자가 되는 최고의 길은 ‘내가 사랑하는 삶을 발견하고, 그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장 간절하게 꿈꾸는 삶을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마음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눈부신 마음돌봄의 길입니다. 마음의 곳간이 아름다운 기쁨으로 가득 차면, 이 다음에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도 견뎌낼 힘이 생깁니다. 더 아픈 상처가 생길지라도 그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면역력, 회복탄력성이 생깁니다. 마음의 부를 쌓아가는 것은 이렇듯 더 나은 나, 더 아름다운 세상, 더 눈부신 사람들과 만나는 길이 열리는 체험입니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입니다.

용기야말로 ‘마음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눈부신 마음돌봄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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