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줄 용기가 아닐까. 나눔이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나눠주는 사람뿐 아니라 나눔을 받는 사람이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눔을 받는 사람이 그 나눔 때문에 상처받는다면, 나눔은 사랑의 표현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자선이 되어버릴 수 있다. 연말이 가까워지고, 기나긴 겨울을 버텨내기 위한 ‘마음의 월동 준비’가 필요한 시간. 나눔의 소중함을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이야기 속으로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자.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나눔이란 어떤 것일까. 나누는 사람도, 나눔을 받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지는 나눔의 첫 번째 사례로 나는 <작은 아씨들>의 ‘조의 머리카락 이야기’를 들고 싶다. 네 자매와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던 조 마치네 가족은 아버지를 전쟁터로 보낸 뒤, 온 가족이 함께 살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멀리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가난한 조 마치네 가족은 어머니의 기차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대고모네 댁에 돈을 빌리러 가게 된다. 조는 매번 돈이 필요할 때마다 대고모네 댁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을 참을 수가 없다.
대고모는 자식이 없어 네 딸 중 한 명을 양녀로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조의 부모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돈 때문에 자식들을 서로 헤어지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가족 간의 정, 자매간의 우애가 두터웠던 조 마치네 아이들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었었고, 서로를 너무도 아꼈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는 ‘우리 가족’의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25달러라는 큰 돈(남북전쟁 당시의 미국이었으니 얼마나 큰 돈이었겠는가)을 구할 방법을 찾아 동동거리던 조는 마침내 방법을 찾아낸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자신의 자산, 기다란 머리카락을 잘라 팔기로 한 것이다. 조의 건강하고 눈부신 머리카락은 최고급 가발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지만, 정작 가족들은 조의 선머슴처럼 짧아진 머리카락을 보며 펑펑 울고 만다. 외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척 털털하게만 굴던 조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 머리카락만은 어딜 가도 안 빠지지’하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조는 이제 머리카락이 짧아져서 관리하기도 편하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한밤중에 홀로 깨어 오열한다. 조는 홀로 어려운 살림을 꾸리는 엄마를 돕고 싶어한 착한 딸이었지만, 겨우 15세였던 것이다. ‘아름다웠던 내 머리카락’에 대한 그리움이 어린 소녀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녀는 깨닫는다. 내가 나의 머리카락을 참 좋아했구나. 설움이 북받친 조는 그만 펑펑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심지어 막내 에이미는 머리카락이 조가 가진 ‘단 하나의 아름다움(one beauty)’이었다며 얄밉게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만, 조는 정말이지 괜찮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을 덜어내어 부모님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에게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말괄량이인 그녀가 가진 ‘유일한 미(One Beauty)’이자 자존심이었다. 보통의 나눔은 내가 가진 ‘남는 것’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유일한 장식을 잘라냈다. 자아의 일부를 떼어내는 고통을 감수한 것이다.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이다. 조는 단순히 물건을 판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를 떼어 사랑하는 사람의 길을 닦아준 것이다. 이것은 나눔이 물직적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헌신’임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온 가족이 슬픔과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조는 밖으로 나가 행동한다. 조는 쿨한 척하며 머리를 잘랐지만, 밤에는 상실감에 아파하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운다. 이 눈물은 그녀의 나눔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라 ‘뼈아픈 희생’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소중한 것을 잃어 아프지만, 가족을 위해 기꺼이 그 아픔을 선택했다는 점이 이 나눔을 완성한다. 조 마치의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나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타인의 어둠을 밝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나눔임을 말해준다. 진정한 나눔이란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떼어주는 것’이니까. <작은 아씨들>의 이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나눔이란 ‘자신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기꺼이 그늘진 곳에 내어주어, 그곳을 빛나게 만드는 행위’라는 아름다운 깨달음을 전해준다.
나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작은 아씨들>에서 로렌스 할아버지가 베스에게 피아노를 선물하는 장면이다. 조 마치네 가족들 중에서 유독 베스에게 연민을 느끼던 로렌스 할아버지에게는 가슴 아픈 트라우마가 있었다. 사랑하는 손주 로리의 아빠, 그러니까 로렌스의 아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로리가 어릴 때 로리의 부모가 사망했기에 할아버지가 로리를 키우고 있었다. 로렌스 할아버지가 베스를 바라보며 유독 연민을 느꼈던 이유는 그의 손녀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는 죽은 손녀의 소중한 유품이었던 것이다.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낸 커다란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는 로렌스 할아버지는 세상을 향해 문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조 마치네 가족을 만난 뒤, 로리가 그 집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로렌스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어느새 소중해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게 된다.
로렌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 마치네 가족들뿐 아니라 마을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와 선물을 아끼지 않았지만, 피아노만은 선뜻 선물하기가 어려웠다. 피아노가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손녀가 남긴 가장 가슴 아픈 유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녀를 기억하는 것이 너무도 가슴 아팠기 때문에. 그러나 베스가 낡고 고장 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자, 로렌스의 마음은 바뀐다. 저 아이에게 제대로 된 피아노를 선물하자. 사랑스러운 베스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세상을 떠난 손녀가 다시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기쁜 일이었던 것이다. 로렌스 할아버지는 문틈으로 베스의 연주를 들으며, 굳게 닫혀 있던 자신의 마음속 방에 촛불이 켜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베스의 연주는 그에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잃어버린 혈육의 온기이자 그리움의 현신(現身)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의 슬픔은 현재의 기쁨으로 변신한다. 죽은 손녀의 슬픈 유품이었던 피아노는 이제 살아있는 베스의 아름다운 악기가 되어 로렌스 가족은 물론 조네 가족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 이렇듯 ‘나눔’은 ‘나’와 ‘너’로 분리되어 있던 존재들을 ‘더 커다란 우리, 더 따스해진 우리’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여, 삶을 바꾸는 용기를 선물해 준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작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가난한 부부 델라와 짐은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각자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한다. 델라는 자신의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을 팔아 짐의 금시계에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체인을 산다. 짐은 그것도 모른 채 자신의 소중한 금시계를 팔아 델라의 눈부신 머리카락을 장식할 어여쁜 빗을 산다. 비록 머리카락은 잘려 나갔고 시계는 사라져서 선물은 사용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 물건에 깃든 사랑의 힘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지지 않았을까. 빗을 쥘 때 델라는 짐의 인생을 만지는 것이며, 시곗줄을 볼 때 짐은 델라의 분신을 보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존재, 더 큰 사랑으로 미래를 견뎌낼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된 것이다. 이런 나눔, 이런 사랑, 이런 따스함이 있다면, 우리는 한겨울의 추위는 물론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는 무적의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