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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5년 12월  347번째 이야기

2025년 12월  347번째 이야기

여기가 거기

군위에서 사유하고, 추억하다

군위는 깊은 자연의 틈 속에서 사유하고, 오랜 이야기를 품은 공간에서 추억하는 법을 깨닫게 한다. 분명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우리들의 2025년. 아쉬움이야 남겠지만, 그 아쉬움마저 훌훌 털어내는 시간을 갖고, 새로운 시작을 기꺼이 반기길 바란다. 군위로 가서, 한 해를 사유하며,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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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의 이름 속에는!

군위군은 대구광역시에 속하는 작은 동네다. 원래는 경상북도 군위군이었지만, 2023년 7월 대구광역시 군위군이 되었다. ‘군위’라는 이름은 태조 왕건이 이 지역 군사들의 사열(부대의 훈련 정도, 사기 따위를 열병과 분열을 통하여 살피는 일)을 받았는데, 위세가 좋다 하여 ‘군위’라는 이름이 붙였다는 설과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이미 ‘군위’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설보다는 김유신 장군이 백제를 치기 위해 군위 효령 장군동에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여겨진다.

연 속에서 사유하다, 사유원

군위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여행지를 말해보라면 단연 사유원이 아닐까. 사유원은 군위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수목원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수목원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국보 반가사유상의 ‘사유’에서 따온 이름처럼, ‘자연 속에서 인생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정원’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TC태창을 이끌었던 사야 유재성 회장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노거수와 석재를 기반으로 시작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300년 된 모과나무 네 그루를 사유원에 사들였는데, 지금도 모과나무는 사유원의 상징과 같은 나무로 인식되고 있다. 더 나아가 건축계의 거장 알바루 시자와 한국의 승효상 건축가 등이 참여한 건축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명실상부한 군위의 대표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연을 걷고, 공간을 누비며 비우다

정문은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지킨다’라는 도덕경의 구절이 있는 치허문(致虛門)이다. 이곳을 지나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입구에서 지도와 물병, GPS 추적이 가능한 물병을 나눠줄 만큼 넓기 때문.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면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목련길을,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백일홍길을 추천한다. 여유가 많다면 3~4시간가량의 모과길이나 고송길이 좋다. 치허문에서 시작해 웬만한 사유원의 모든 공간을 누려볼 수 있으니까. 곳곳을 누비며 사야 유재성 회장이 평생 아꼈던 바위,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소사나무, 소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 등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보자. 걷다가 지치면 광활한 자연 속에 자리한 소대, 소요헌, 현암, 가가빈빈, 사담 등의 이름을 가진 공간들에 멈춰 서 숨을 골라볼 것. 공간 자체가 주는 멋에 차가운 바람, 지저귀는 새 소리가 더해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해 동안, 이유 모를 상념들로 어지러웠던 몸과 마음을 덜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공간 자체가 주는 멋에 차가운 바람, 지저귀는 새 소리가 더해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해 동안, 이유 모를 상념들로 어지러웠던 몸과 마음을 덜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름다운 추억이 깃든 화본역

화본역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군위는 몰라도 ‘화본역’은 아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유원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화본역은 2024년 12월 공식적으로 폐역이 되었지만, 화본역 그린스테이션 사업의 일환으로 1936년대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다시 태어났다.

마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외관과 정겨운 분위기 덕분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예능 <손현주의 간이역>에도 등장하며 더욱 유명세를 탔다. 외관도 멋스럽지만, 화본역이 더욱 매력적인 건 누군가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대합실 안에는 옛 역무원들이 쓰던 낡은 소품들이 전시돼 있고, 정원 옆에는 달리지 않는 2량의 기차가 있다. 이곳은 옛 새마을호를 활용한 카페다. 기차 카페에 앉아 추억을 나누는 어르신들과 기차 안의 풍경에 신이 난 아이들의 모습이 뒤섞인 풍경을 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신청만 하면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관광할 수도 있다. 철도를 따라 인생 사진을 남겨도 좋고, 증기기관차의 추억이 담긴 급수탑까지 산책하는 것도 좋다. 누군가의 추억이자, 추억이 될 화본역에서라면 무엇을 해도 낭만이 배가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길을 따라 인생 사진을 남겨도 좋고, 증기기관차의 추억이 담긴 급수탑까지 산책하는 것도 좋다.
누군가의 추억이자, 추억이 될 화본역에서라면 무엇을 해도 낭만이 배가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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