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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6
여름을 지나 9월이 되면, 사람들은 문득 하늘의 빛깔이 달라졌음을 알아챈다. 뜨거움은 한 발 물러서고, 공기는 한결 투명해진다. 그런데 미술관 속 화가들은 늘 이 계절의 빛을 사랑했다. 센 강변 공원에서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파리 시민들 안에서,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을 머금은 식탁 위에서, 그리고 아르장퇴유 들판을 물들인 붉은 양귀비 사이에서 그 빛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빛을 건네는 그림 세 점을 소개한다.
(1873)
첫 번째 그림은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이다. 인상주의라는 말의 어원이 된 인상, 해돋이와 함께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다. 그림 속 세계는 여름 햇살로 가득하다. 화면은 가로로 나뉘어 위쪽은 구름 낀 하늘이, 아래쪽은 붉은 양귀비꽃이 흐드러진 들판이 차지한다. 전경에는 양산을 쓴 여인과 어린아이가 서 있는데, 이들은 화가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며 멀리 언덕 위에도 다시 등장한다. 지평선의 경계는 희미하게 풀어졌고, 인물의 세부는 과감히 생략되었으며, 양귀비꽃은 빠른 붓질의 점으로만 표현되었다. 이 그림이 완성된 아르장퇴유는 파리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외곽 마을로, 모네가 1871년부터 1878년까지 머물며 인상주의의 여러 문제작을 그려낸 장소다. 당시 관객들에게는 미완성 습작처럼 보였을 이 화면이, 지금의 눈으로는 추상미술의 전조를 보여주는 혁신적인 그림으로 읽힌다. 초록 들판 위에 흩뿌려진 붉은 점들의 보색 대비는 화면 전체에 경쾌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빛은 완벽하게 그려낸 세부에 있지 않다. 모네의 붓질처럼 흐릿하게 풀어진 순간,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걸어가는 사람들의 인상 그 자체가 환함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오늘 놓쳐버린 찰나의 빛이 아쉬워진다.
(1925)
두 번째 그림은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식당>이다. 보나르는 인상주의 이후의 색채 실험을 자신만의 사적인 풍경으로 확장한 화가다. 그는 아내 마르트와 함께 살았던 남프랑스 르 카네의 집을 자주 그렸는데, 그에게 집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빛과 색이 매일 새롭게 바뀌는 관찰의 장소였다. 그림 속 식당은 조용하면서도 눈부시다. 창밖의 정원에서는 남프랑스의 강한 햇살이 밀려들고, 실내의 벽과 식탁보, 의자와 꽃병은 그 빛을 받아 저마다 다른 색으로 물든다. 식탁 위의 과일과 꽃, 흩어진 생활의 물건들은 선명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노랑과 주황, 분홍과 보라, 초록과 파랑이 서로 번지고 울리며 실내 전체를 따뜻한 빛으로 감싼다. 보나르는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 공간에 오래 머문 사람의 기억과 감각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는 사물의 정확한 형태보다 어느 늦은 오후 창문을 통과하던 빛, 혼자 식탁에 앉아 있던 시간의 온도가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그는 일상의 풍경에서 특별한 사건을 찾지 않았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빛의 감정을 붙잡고자 했다. 빛은 넓은 풍경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창문 하나를 지나 식탁 위에 내려앉고, 익숙한 방의 벽면을 낯선 색으로 바꾸는 순간에도 빛은 우리를 멈춰 세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바쁘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친 내 방의 오후와 그 안에 드리운 작은 햇살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1884~1886)
세 번째 그림은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다.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쇠라가 2년에 걸쳐 완성한 대표작이다. 참고로 신인상주의란 색채 이론에 근거해 작은 색점을 촘촘히 찍어 화면을 구성하는 화풍이다. 그림 속 장면은 눈부시게 한가롭다. 파리 근교 센 강의 그랑드자트섬, 나무 그늘과 강변 사이로 마흔 명 넘는 시민들이 흩어져 여름날 오후를 보낸다. 누군가는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누군가는 양산을 쓴 채 산책을 즐기며, 우측에는 부풀린 치마를 입은 여인이 애완 원숭이를 데리고 서 있다. 인물들은 미묘하게 정지된 듯 보이지만, 그 뒤로 펼쳐지는 배경은 강렬한 여름 태양으로 가득하다. 흥미로운 점은 쇠라의 제작 방식이다. 그는 이 화면을 완성하기 위해 60점이 넘는 드로잉과 스케치를 남겼고,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무수히 작은 점과 붓터치를 반복해 쌓아 올렸다. 인접한 색점들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으로 인지되어 오히려 더 밝고 활기찬 채도로 살아난다는 색채 이론을 그는 그림으로 증명해냈다. 이 작품은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자 전시회에 출품되며 큰 주목을 받았고, 지금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빛은 거창한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 하나가, 백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환하게 빛난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오늘 하루 볕 한 자락 느끼지 못한 스스로가 떠오른다.
빛나는 순간은 완벽하게 정돈된 상태가 아니다.
쇠라처럼 나무 그늘 아래 함께 앉아 오후를 흘려보내는 일이고,
보나르처럼 익숙한 공간에 스며든 빛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며,
모네처럼 흐트러진 찰나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이 세 가지가 겹쳐질 때 비로소 우리는 9월의 빛에 가까워진다.
여전히 여름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 이들에게 이 그림들을 건넨다.